Dark Necessities
vostok seoul
2016. 8. 17 - 25
특정한 물건 : 가구도 조각도 아닌
Specific Object ; not furniture nor sculpture 
글 / 임성연 (보스토크 대표)
  설치예술가 박영진은 가구같이 생긴 무엇을 만든다. 예술가구(art furniture)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각이라 하기도 모호하다. 그녀는 매번 전시마다 가구가 연상되는 형태를 만든다. 2016년 8월 연희동 보스토크에서 준비한 첫 개인전에는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이나 푸트코트가 연상되는 기다란 의자와 식탁을 만들어 전시장 전체를 채웠다. 2층이 카페인 곳에 또 다른 그녀의 카페를 1층에 은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검은색의 레이어가 가리고 있어 여럿이 앉아 먹고 즐기기에는 제약이 많다. 아주 불편한 가구다! 

  그녀의 예전 작업을 다시 살펴보니 항상 ‘가구 같은 것‘을 만들어왔다. <마주하기로>란 작품은 두 명이 마주 앉을 수 있는 특별한 책상(혹은 식탁)을 만들었다. 그런데 마주할 수 있는 그사이에 칸막이를 두어 마주함을 제지한다. 다행히 칸막이의 옵션은 다양하지만, 여전히 그녀 작품에 앉아 마주할 두 사람은 서로를 온전히 볼 수 없다. 인간은 가구가 없어도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편리함 때문에, 혹은 소유주의 성격, 취향, 사회적 지위 등을 대신 표현해주는 수단으로 가구가 사용된다. 또한, 가구의 디자인과 그 배치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변형시킨다. 예를 들어 4인 가족이 앉는 식탁 앞에 TV가 있다면, 그 가족은 거의 대화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용하는 사람의 시선을 단절시키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박영진의 ’가구 같은 것‘들을 통해 그녀는 어떤 삶의 방식과 관계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번 개인전에도 검은색 레이어들이 가득 차있다. 기다란 두 개의 벤치가 마주한 채로 가로지르는 틈 없이 평행선을 이룬다. (보스토크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번 작품은 아주 불편할 수 있다) 벤치 사이마다 동그란 테이블이 놓여있어 다행히 누군가 마주 앉을 수 있지만, 텐트처럼 검은색 비닐 레이어들이 벤치와 테이블 사이를 사선으로 가로지른다. 어떻게 보면 텐트 안에 들어간 듯 포근한 둘 만의 공간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건너편의 사람과 제대로 마주볼 수 없을 정도의 거추장스러운 비닐 레이어들이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도대체 이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녀는 친절하게도 작품 활용법을 전시장 입구에 배치했다.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밝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곳까지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선택해서 앉으면 된다. 아주 친밀하다면 어두운 곳에 은밀하게 앉고 싶을 것이다. 

  마치 카페와 같은 세련된 전시장 입구를 지나 점점 안으로 들어가면 조명은 완전히 꺼져있다. 그 은밀한 끝에는 작가가 특별히 선곡한 음악 Red Hot Chili Peppers의 Dark Necessities가 반복해서 들린다. 밝은 성격과 외모가 매력적인 박영진 작가는 이번 작품에는 온통 검은색뿐이다. 우연히 나무에 검은색을 칠했는데 생각보다 매력적이라 생각하던 중 우연히 레드핫 칠리페퍼의 신곡을 듣게 되면서 갑자기 둥둥 떠 있던 그녀의 감정들이 하나로 정리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녀 안의 숨기고 싶은 검은 감정들, 외형은 밝아 보이지만 사회에 첫발을 딛는 젊은 작가가 겪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나무와 검은색 페인트와 음악이 만나면서 형상으로 나타나고, 그녀는 감추고 싶은 생각의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가 그녀의 초대를 받아들인다면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음식과 음료, 술을 마시며 그녀가 만들어 놓은 ‘가구 같은 것’ 속에서 은밀한 혹은 친밀한, 서먹한 혹은 멀리하고 싶은 관계들에 대해 직접 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박영진 작가의 또 다른 작업 스타일은 음식을 나누며 사람들 관계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한다. 2013년부터 시작한 <Coffee Gym> 프로젝트와 제주문화재단의 ‘빈집 프로젝트’에서 제작한 그녀의 ‘가구 같은 것’들은 관객이 음식과 함께 서로의 친밀한 관계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가구 같은 것’에 레이어를 만들어 관계를 차단하는 다른 작업과 반대로 음식을 사람 관계 사이에 추가하여 더 친밀하고 편안하게 하는 두 개의 모순적인 작업을 해오던 작가가 이번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혼합한 공간을 만들었다. 예전의 카페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혼자 시간 때우며 노트북으로 작업하면서 혼자 있어도 쑥스럽지 않은 안전한 공간으로 변형된 듯하다. 박영진은 여기에 장치를 더하여 혼자도, 둘도 각자가 원하는 시선과 관계를 만들어 선택할 수 있는 ‘카페 같은 것’을 만들었다. 

  드디어 전시 오프닝날, 무리지어 온 친한 친구 그룹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음식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약간 덥긴 하지만 전시장 느낌에서 멀어져 어두운 곳에서 술과 음식을 편안하게 즐기고 있었다. 반대로 박영진 작가와 서먹한 관계의 손님은 안쪽까지 구경하고, 다시 슬그머니 앞쪽으로 나와 앉았다. 밝은 곳에서 앉아 대화하는 것이 편안하다고 한다. 우리가 요즘 사람들과 어떤 친밀도로 지내는지 그녀가 제시한 공간 속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찬찬히 의자 하나하나에 앉아보면서 레이어들과 조명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와 마주한 사람과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직접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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